나에게 예진은 윗상사, 일을 시키는 사람이다. 우린 공적인 관계이다. 적당한 예의를 지키고 만나면 인사를 하고 그 정도 사이. 그런 그녀와 면대면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느낀 것이 있다.
때로는 어떤 사람을 알아가면서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되는구나. 아니, 잘하고 싶어 지는구나.
일은 사람이 한다. 그리고 그 사람들이 조직을 만든다. 그래서 우리가 일로 엮인 사이더라도 서로에 대해 잘 알 때, 그 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 같다.
나는 사회에서 만난 인간관계에 대해 굉장히 냉소적이다. 우리가 일하러 만난 사이이지, 놀러 온 사이가 아니니까. 시시콜콜 내 이야기를 말하는 것도 웃기고, 감정을 나누는 일이 굉장히 소모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. 그래서 회사에서도 내 일만 잘하면 되지 주의지. 딱히 누가 표정이 안 좋고 무슨 일이 있고 그런 일을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는다.
처음 예진이 혼자 밥 먹는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을 때도 경계를 했다. '도시락 싸 오시는 거예요?' 하며 서두를 열은 그녀는 팀원들을 한 명씩 알고 싶다며 말을 이었다.
"사실 제가 더 잘하면 더 잘될 분들이 많아요. 좋은 부모 만나면 애들이 더 잘 자라듯이, 제가 좋은 부모면 좋았을 텐데. 올 해는 저희 부서 사람들을 한 분 한 분 만나면서 이야기 나누고 싶네요. 물론 다 만나기 어려울 테지만, 시간이 되는 사람들만이라도."
이 말을 하고 25년도가 되면서 정말 한 명 한 명 만나더니, 내 차례가 왔다. 그렇게 한 이야기가 꽤 재미있었고 이 사람을 알게 되니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. 살아온 환경도 비슷하고, 생각하는 것도 비슷했다.
"어떻게 그렇게 일하시는지. 대단해요."
"팀장은 저와 맞지 않아요. 저는 항상 일어나면서 저 자신을 죽이고 온답니다."
자신을 죽이면서 나온다는 말. 맞지 않는 일을 하지만 맡겨졌기 때문에 한다는 것.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사람의 싫은 소리를 잔소리라고 생각했는데, 그런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. 이런 마음으로 일을 대하니까 그 자리에 앉은 걸까. 아니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 걸까. 둘 다라고 생각한다. 이 큰 그릇을 내가 또 배운다.
"포기한 것에 어떻게 미련이 없으세요?"
"한 번 포기하니까, 쉬워져요."
우린 정말 비슷한 삶의 궤적을 돌았던 것 같은데, 단 하나의 차이는 나는 내가 한 선택이 다 후회로 돌아왔다는 것. 그리고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이 많다는 것.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가 선택한 것의 메리트를 더 생각한다. 포기할 때의 미련이 없는 것이 부러웠다.
나는 그녀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, 또 몇 가지 배울 점도 생겼다.
말한 것을 행동을 옮기는 것, 자신이 한 선택에 메리트를 찾는 것, 하루의 마지막을 긍정으로 마무리하는 것.
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생각이 든 것은 나도 사람과 조금 더 마음을 열고 가까워질 필요가 있겠다.
회피성 마음으로 상처받기 싫어서 지레 선을 긋는 것도 맞고, 마음 맞는 착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어렵다는 것도 맞다.
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에너지가 줄고, 내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. 그렇지만 더욱 마음을 닫고 사람들을 만난다면 나에게 좋은 기회도 지나가게 될 것 같다. 이런 좋은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기회 말이다.
미워하는 사람의 일기를 보면,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.
나도 일로 엮인 사람 중에 미운 사람이 있다. 그런데 내가 그 사람을 알아간다면, 나는 정말 미워할 수 있을까?
아니, 난 아마 이해하게 될 것 같다.
(하지만 그중 쓰레기들도 있으니 잘 걸러야 한다.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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